은천교회

목회칼럼

 

파라볼라노이

  • 구교환
  • 2018.03.10 오후 01:30

파라볼라노이


 

예수 부활 이후 기원 4세기에 이르도록 교회와 성도들은 공개적인 집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은밀하게 모였고 어디 가서 예수 믿으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끔찍한 박해가 있었고 예수 믿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는 엄청난 속도로 부흥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는데 교회가 부흥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순전한 삶과 사랑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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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년 로마황제 디시우스(Decius:249-251)에 의해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전염병이 돌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시신이 도시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쌓여갔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이들은 전염병을 피해 도망을 쳤습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의 주교였던 키프리안(Cyprian:210-258)은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침을 따라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위협을 무릎 쓰고 형제들은 물론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던 이교도들에게까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본 이교도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붙여준 호칭이 바로 그리스어 말로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νοι)’였습니다. ‘위험을 무릎 쓰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음은 키프리안 주교가 했던 설교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가 단지 우리(그리스도인)들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만일 누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를 본받아야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전도가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찾는다면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지나치게 세속에 물들어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위험을 무릎 쓰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파라볼라노이가 된다면 전도의 문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파라볼라노이를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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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라볼라노이
  • 201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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