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없는 세상을 소망하며
폭우 때문에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운지 ‘서프리카’라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입니다.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는 분들이 많고 온열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폭염 경보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은데 얼마나 힘들까 하는 걱정을 지워낼 수 없습니다.
‘폭’이라는 글자가 무섭습니다. ‘폭’이 들어가는 단어들이 많은데 반갑지 않은 말들뿐입니다. 폭염(暴炎)과 폭우(暴雨)를 비롯하여 폭력, 폭행, 폭도, 폭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잘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는데 말을 심하게 하면 폭언이 됩니다. 달리는 것이 좋지만 너무 빨리 달리면 폭주족이 됩니다. 웃는 것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 폭소(爆笑)라고 해서 실없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온통 곪아서 썩은 것을 폭삭이라고 합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暴’이나 ‘爆’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 사이에 ‘폭망했다’는 신조어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폭삭 망했다는 뜻으로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이지만 굳이 가져다 붙인다면 ‘暴亡’ 혹은 ‘爆亡’이라고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폭리, 폭등, 폭락 등등 여러 단어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좋은 말들은 아닙니다. 이 땅에 ‘폭’자가 들어가는 말들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5일, 인천의 어느 아파트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62세)가 사제총기를 발사해 아들(33세)을 살해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생신이라고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그 자리에 며느리와 손자 두 명, 그리고 아이들의 원어민 영어교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이야기가 돌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20년 전 이혼했다는 것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사건 역시 ‘폭’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폭’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폭우도 없고 폭염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물가가 폭등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가도 폭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간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잠언에 등장하는 소박함이 그립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30:7-8)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