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하게 사는 축복
둔하게 사는 축복
이시형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정신과 전문의이신 이시형 박사는 정신 문제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과 독창적인 인생론으로 행복한 인생을 꿈꾸는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분입니다.
우리 시대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넘쳐나는 시대를 살면서도 불행하기만 한 현대인들에게 이시형 박사는 둔하게 사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강조합니다. 2015년 발간된 『둔하게 삽시다』라는 책에서 둔감력(鈍感力)이라는 말을 소개하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 둔한 것이 오히려 장점임을 설명합니다.
피부도 너무 예민하면 피부염이나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고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류마티스 관절통이 오는 것은 너무 과민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이상한 것을 먹어도 복통이 오는 것 역시 지나치게 과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민한 성격의 소유자는 잠자리가 조금만 바뀌어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만큼 건강한 삶은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직업적으로 민감해야 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음의 높고 낮음과 빠르기에 민감하지 않으면 음악가가 될 수 없습니다. 컴퓨터에 나타나는 작은 수치의 변화에 의사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주식시장의 등락 추이에 민감하지 않으면 투자가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는 아이의 숨소리에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둔한 쪽이 편안합니다. 한밤중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에 눈을 뜰 이유가 없습니다. 지하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초리가 자기를 바라본다고 느끼고 흥분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깨를 부딪쳐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툴툴 털어내면 그만입니다. 긴장은 하되 적당히 하고, 때로는 느슨하고 수월하고 대충하기도 하는 등 강약 조절을 잘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강조합니다. 또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는 말씀 역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