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
로뎀나무 아래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교회 앞에 있는 작은 은행나무에서도 노란 잎들이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가까운 공원에만 가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낙엽 쌓인 거리를 걸을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이 2012학년도 대학입학 수능고사를 치르는 날입니다. 백화점에는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했다고 하는데 라디오에는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는 노래가 을씨년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벌써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지금부터 약 2,900년 전,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던 무당들과 큰 싸움을 싸웠습니다. 성경은 선지자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당입니다. 바알의 무당 400명과 아세라(바알의 아내, 혹은 어머니) 무당 450명을 엘리야는 상대했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싸움에서 승리를 한 엘리야가 바알종교의 열심 신자였던 이세벨 왕후가 쫓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을 쳤습니다.
엘리야는 죽기 살기로 도망을 쳤습니다. 남쪽으로, 왕국의 가장 남쪽 브엘세바로,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광야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는데 거기가 바로 로뎀나무 아래였습니다. 로뎀나무(Broom tree)는 콩과에 속한 늘푸른떨기나무 혹은 대싸리나무의 일종입니다. 사해주변과 유대 광야에 자생하는 것으로 3.5m 정도로 자라는데 잎이 거의 없고 잔가지가 많아서 여행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줍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는 죽음을 자청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19:4). 그리고 피곤에 지쳐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음식을 준비한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권합니다. "일어나서 먹으라"(왕상19:5). 천사의 권유에 따라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시고 힘을 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로뎀나무 아래"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인생의 무상을 느끼며 더 이상 살아 무엇하겠냐며 절망 가운데 죽음을 자처하는 피곤한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곳이 바로 로뎀나무 아래입니다. 낙엽 따라 가버렸다고 떠나간 사람을 아쉬워하는 인생이 변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며칠 전, 황혼 무렵에 어느 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깨 위로, 머리 위로 낙엽이 떨어지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때 엘리야 생각이 났습니다. 피곤에 지쳐 죽음을 생각하던 엘리야, 하지만 천사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낙엽 떨어지는 나무 밑에서 한숨을 쉬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사랑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교환 목사 (9chan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