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축의금 백 만원

  • 임영종
  • 2022.03.26 오후 02:10

    고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군에서 제대한 이후 작은 사업을 시작했는데 예상 외로 잘 풀려 탄탄대로를 걸었습니다. 다른 친구 역시 무역업에 손을 댔는데 생각 같지 않았습니다.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세계 경제가 출렁이면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친구는 중견사업가로 우뚝 섰고, 다른 친구는 작은 회사에 취업하여 힘들게 살았습니다.

    두 친구는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하는 일도 달랐고 살아가는 모습도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중년이 되었고 자녀들의 혼사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어렵게 사는 친구가 사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친구는 마치 자기 딸이 시집가는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의금으로 100만 원, 그리고 신랑 신부와 사진도 찍었습니다.

    4년 후, 이번에는 성공한 친구의 아들이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친구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사는 형편에 축의금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백만 원을 받았으니 그 만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편했습니다. 친구는 여기저기 조금씩 빚을 얻었습니다. 축의금 백만 원, 오랜 만에 만난 두 친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식이 끝나고 친구들은 인근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우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어렵게 사는 친구에게 등기우편물이 배달되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얼마 전 아들을 장가보낸 친구, 처음에는 혼사에 감사하는 인사를 등기로 보내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봉투를 뜯어보니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결혼식에 와주어서 감사하다, 그런데 백만 원 축의금은 좀 그렇다, 그래서 이백만 원을 동봉하니 식구들과 식사라도 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막 줄에는 우리 우정을 위해서 그냥 받아주면 고맙겠다라는 추신이 적혀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 깊이 작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바로 '친구'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요즘같이 대면(對面)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오랜 친구가 그립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오랜 친구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명예와 재물은 잃어도 친구만큼은 꼭 간직하고 싶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도 그립습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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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의금 백 만원
  • 202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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