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보지 못하지만 보았던 사람

  • 성지현
  • 2023.10.28 오전 11:46

  보지 못했지만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았던 사람, 길선주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의 큰 별로 남아 있는 길선주는 1869년 평남 안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아버지는 일곱 살이 된 아들을 글방에 보내 한학을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총기가 있어 학업이 뛰어났으며 사고력과 정서도 풍부했다고 전해집니다. 길선주는 11살 때 신선행이란 자매와 혼인을 했습니다.

청년 길선주는 지방 서기관직에 임명되었는데 낮은 신분 때문에 허드렛일만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참다못한 길선주는 일을 그만두고 행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일도 여의치 않자 결국 평남 안국사라는 사찰에 들어가 도교(道敎)를 연구하는 일에 전념합니다. 이 때 그의 나이 25세였습니다.

  안국사에서 길선주는 진리를 찾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40일을 작정하고 밤낮으로 수행을 할 때는 얼음물을 눈에 부으며 쏟아지는 잠을 쫓았습니다. 하지만 눈에 부작용이 일어나면서 길선주는 시력을 잃었습니다. 안국사에 들어온 지 5, 신선의 힘을 빌어 인생의 참 길을 얻겠다고 노력했는데 얻은 것은 없고 시력만 잃은 것입니다.

  어느 날, 친구 김종섭이 찾아 왔습니다. 김종섭은 길과 진리, 생명은 한학이나 도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친구에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길선주는 친구가 놓고 간 천로역정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읽어주고 길선주는 듣고, 듣다가 감동이 되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습니다. 길선주는 북장로교 선교사 이길함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 되었습니다.

  길선주는 묵묵히 주의 길을 걸었습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이들이여. 나는 보지 못하지만 참 빛을 봅니다.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빛이십니다.” 길선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 있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 28살에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제1대 목사 길선주는 장대현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민족 복음화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숭실학교와 숭덕학교를 설립했으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체포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옥에서 길선주는 요한계시록을 만 번 이상 읽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설교를 하던 길선주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져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935, 향년 67, 장례행렬을 따르는 이들이 1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보지 못했지만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았던 신앙의 거인 길선주입니다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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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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