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어느 자매와의 만남

  • 구교환목사
  • 2014.01.11 오전 11:16


어느 자매와의 만남


  며칠 전, 전에 섬기던 교회 장로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급할 때만 전화 드린다는 말부터 꺼내신 장로님은 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한 번 들려주실 수 없겠냐며 정중히 부탁을 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 와서 안수기도를 해주셨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시간을 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10년도 넘게 흘렀습니다. 그동안 두 내외분은 장로님과 권사님이 되셨고, 초등학생인가 중학생이었던 아이는 26살 성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확인할 여유조차 없이 암세포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난소와 장기 몇 군데를 드러내는 수술을 몇 차례 받았는데 그 무서운 녀석이 이제는 대장을 휘감고 있어 유착된 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도 마시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났고 담당의사로부터 2-3개월이라는 시한부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가족들 이외에는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교회에도 알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몇몇 분들이 생각이 났는데 10여 년 전 다른 교회로 떠난 목사에게까지 연락을 한 것입니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병실에 들어섰습니다. 자매는 양다리를 한껏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수액 주사와 영양제, 그리고 몸 안에 이물질을 빼내는 것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것까지, 서 너 개의 연결선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자매의 표정을 밝았습니다. 밝아도 너무 밝았습니다. 잔뜩 긴장한 목사를 자매는 해맑은 웃음으로 맞았습니다. 많이 컸다는 인사에 "목사님, 머리가 하얘졌어요."라고 되받았습니다. 가끔씩 진통이 오는지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웃었습니다.

 

  1시간 남짓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자매는 "얘가 문제예요."라며 자기 배를 가리키며 거기에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시편 23편과 121편을 읽어주고 그 부모와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배웅을 나오신 장로님께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교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그 날 사실은 그 자매보다 목사가 더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영성지도자인 헨리 나우웬이 라르쉬공동체에서 장애인들을 돌보며 오히려 장애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 실감이 날 정도였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26살 자매를 통해 하나님은 넋 놓고 살아가고 있는 목사의 양심을 깨워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백 편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이어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충격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고백합니다. 너무나 소중한 삶이기에 좀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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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자매와의 만남
  • 2014-01-11
  • 구교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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