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아름다운 날입니다

  • 구교환목사
  • 2013.01.01 오후 09:55

 

아름다운 날입니다

 

  공원 한 모퉁이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허름한 옷을 입고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스를 펼쳐놓고 그 위에 앉아 조그마한 양철통을 앞에 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행색이 남루하여 누가 보아도 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할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는지 박스 한 쪽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지나가는 이들이 힐끔힐끔 돌아보았습니다. 그 중에 어떤 이들은 동전을 던지기도 했지만 대개는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배고픔을 참고 있을 무렵 예쁘장한 젊은 여인 하나가 그 곁을 지나갔습니다. 젊은 여인은 선글라스를 끼고 미니스커트에 뾰족구두를 신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2-30 미터 정도 그냥 지나친 여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발걸음을 돌려 할아버지 앞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여인은 가방에서 굵은 펜을 하나 꺼내더니 "앞을 보지 못합니다"라고 적힌 박스 뒤쪽에 무엇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양철통에 넣고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인의 신발을 만지며 고맙다는 인사를 할 뿐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아버지의 양철통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한 푼 두 푼 할아버지를 돕는 이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 중에는 지폐를 넣는 이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두둑해진 주머니를 쓰다듬으며 그만 일어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뾰족구두 신은 젊은 여인이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인의 구두를 만지작거리며 물었습니다. "아가씨, 아까 뭐라고 썼나요?"

과연 여인은 뭐라고 적었을까요? 뭐라고 적었기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던 것일까요? 박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날이네요. 하지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날입니다. 모두들 힘들다고 불평하고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며 끙끙거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세상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할아버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름다운 날이라고 쓰는 젊은 여인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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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날입니다
  • 2013-01-01
  • 구교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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