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기왕이면 큰 녀석으로

  • 구교환목사
  • 2013.02.08 오후 02:16

 

기왕이면 큰 녀석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역사 가운데 하나가 BC 1406년 경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에 들어서자 무섭게 흐르던 요단 강물이 끊어졌습니다. 물길을 틀어 다른 곳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백성들은 마른 땅으로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백성들이 건너기를 마치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장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강 가운데로 사람들을 보내 그곳에서 돌 열두 개를 들고 나오도록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택해 돌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돌의 용도는 중요했습니다. 바로 훗날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 산 증거물로 사용하라는 목적이었습니다.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4:6-7).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모두 12명의 일군들은 강에 들어가 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이 강에서 빠져나오자 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과연 그들은 어느 정도 크기의 돌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어깨에 메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아 돌멩이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큰 돌, 어깨에 멜 정도로 가능하면 큰 돌을 들고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역사적 증거물로 쓸 돌이라면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바위에 가까운 것을 선택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설 명절입니다. 선조들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기에 명절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아, 부모와 어른들을 찾아서 떠납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우리가 우리의 후손을 위해 무언가를 남겨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훗날 후손 가운데 누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셨던 분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분명한 증거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손때 묻은 성경이든, 아니면 역사적 현장이 담겨 있는 사진첩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을 가지러 강 가운데 들어갔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돌을 골라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돌이어야 합니다. 기왕이면 아름답고 큰 돌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리가 휘더라도 어떻게든 들고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거인(巨人)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설 명절에 우리가 만난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운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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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왕이면 큰 녀석으로
  • 2013-02-08
  • 구교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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