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비텐베르크의 샛별

  • 구교환목사
  • 2012.11.07 오후 05:05

 

비텐베르크의 샛별

 

  15171031,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항의하는 95개의 질의서를 게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은 발끈했고 젊은 사제 마르틴 루터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교회의 개혁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폰 보라(1499-1552)라는 18세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3년째 수녀원에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접하면서 신앙과 세상을 달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루터의 가르침에 매료된 폰 보라는 드디어 수녀원을 떠나기로 작정하였는데 수녀원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루터는 친구이자 부자 상인이었던 콥(Kopp)에게 그녀의 탈출을 부탁하였습니다. 콥은 궁리 끝에 음식물 광주리를 이용해 12명의 수녀들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수도원들은 광주리를 오르내려 수도원 내부로 음식물을 공급했는데 폰 보라 역시 그 광주리에 몸을 싣고 탈출한 것입니다.

 

  루터는 수녀원을 이탈한 수녀들에게 기거할 장소를 제공하고 적당한 남자들을 소개하여 가정을 이루도록 도왔습니다. 그런데 폰 보라만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자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가정을 갖게 된 폰 보라는 남편 루터를 헌신적으로 지원하였고 루터 역시 규모 있게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폰 보라는 남편이 저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정 경제를 담당하였고 33녀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안일을 챙겼다고 합니다. 루터는 몸이 약해 자주 병을 앓았는데 폰 보라는 수녀원에서 배운 의학 지식을 동원하여 병약한 남편을 돌보았습니다.

 

  폰 보라는 남편 마르틴 루터가 서거한지 3년 후인 1546년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뜨자 사람들은 독일 가정의 최고의 모델이라고 그녀의 가정을 치켜세웠고 그녀에게는 '비텐베르크의 샛별'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남편이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을 때 그 허리춤을 붙들어 세워주는 여인, 남편이 정신없이 달려 나갈 때 살며시 다가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여인으로 비텐베르크의 샛별은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일, 종교개혁기념주일을 지내면서 개혁의 중심이었던 마르틴 루터와 그의 여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위대한 영웅 뒤에는 언제나 반려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힘을 합해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샛별은 과연 누구일까? 괜한 생각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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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텐베르크의 샛별
  • 2012-11-07
  • 구교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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