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길하든 흉하든

  • 구교환목사
  • 2012.06.17 오전 10:25

길하든 흉하든

 

  솔로몬 임금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두 나라 임금들은 서로를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틈만 나면 쳐들어갈 기세로 으르렁거리며 살았습니다. 남북 대치국면 상황이 거의 8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는데 드디어 기원전 850년 무렵, 드디어 남북 정상 간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북쪽의 아합 임금과 남쪽의 여호사밧 임금이 화친조약을 맺었습니다. 아람이라든가 에돔, 모압 같은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에 대해 위기감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임금들은 사돈을 맺고 사이좋게 서로 도우며 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드디어 아람과의 전쟁이 발발하자 두 정상들은 연합군을 결성하였습니다. 출정에 앞서 그래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있었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남쪽 임금의 제안을 받고 북쪽 아합 임금은 서둘러 선지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무려 400여 명, 선지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왕상22:6). 아합은 신이 나겠지만 여호사밧은 달랐습니다. 입을 맞추는 것이 이상하다 싶어 여호사밧은 또 다른 선지가가 있는지 찾았습니다. 이 때, 아합의 대답이 엉뚱합니다.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왕상22:8).

 

  여호사밧은 바로 그 선지자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할 수 없이 아합은 사람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부르러간 사람을 통해 선지자에게 좋게 말하라고 지시를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22:13). 하지만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만을 말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 내용이 길하든 흉하든 개의치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참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400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선지자가 귀합니다. 혹 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고 기분을 언짢게 한다 할지라도 그게 진짜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로운 말씀, 축복의 말씀에만 밑줄을 긋고 있지 않습니까? 길하든 흉하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분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때로는 거북하게 들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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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하든 흉하든
  • 2012-06-17
  • 구교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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