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나무 열매와 종탑

  • 구교환목사
  • 2011.12.18 오전 10:51

나무 열매와 종탑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글 가운데 "나무 열매와 종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까마귀가 한 마리 있었는데 나무 열매를 물고 가다가 높이 솟은 종탑 꼭대기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무 열매는 종탑의 갈라진 틈새에 떨어진 덕에 다행히 깨지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 열매가 종탑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이 벽 사이에 살게 해주신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나무 열매는 종탑을 향해 사정을 했습니다. 종탑의 은은한 소리를 치켜세우기도 하며 종탑을 우러러보며 그 높이와 웅장함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떨어진 열매 하나가 아첨도 하고 사정도 하는 통에 종탑은 은근히 목에 힘이 들어갔고 결국 종탑은 벽 사이에 나무 열매가 살도록 허락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열매는 싹을 틔웠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뿌리들은 점점 자라더니 벽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어떤 뿌리는 종탑 벽의 허름한 부분을 헤집고 들어가 조금씩 벽채를 벌리기까지 했습니다. 열매에서 난 싹도 하늘을 향해 밀고 올라오더니 새순은 곧 종탑 위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얽히고설킨 뿌리는 점점 굵어져 벽과 벽 사이를 흉측하게 벌려놓았습니다. 하늘을 향해 오르던 줄기는 이제 종탑보다 높이 자라 아예 종탑을 가려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오래된 돌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져나가더니 드디어 하나둘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제야 종탑은 후회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딱 잘랐어야 했었는데 하고 한탄을 했지만 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송년모임 혹은 망년회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쉬웠던 점, 송구스러웠던 이야기들을 잊어버리자는 것이 망년회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새해를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잊어버린다고 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아예 씻어내고 잘라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1-22)고 말씀합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과감하게 씻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것이 자라나 전체를 못 쓰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야기에서 나무 열매는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작은 악입니다. 감언이설에 속아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결국 종탑 전체를 무너뜨리고 말았다지 않습니까?

 

  송년모임도 좋고 망년회도 좋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먹고 마시는 모임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가 오기 전, 악의 모양은 모두 잘라내고 더러운 것들 씻어내야 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새해를 맞이할 때 기쁨이 더욱 커지리라 기대합니다.

 

구교환 목사 (9change@hanmail.net)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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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열매와 종탑
  • 2011-12-18
  • 구교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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