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머리에서 가슴으로

  • 구교환목사
  • 2011.09.20 오전 09:59

머리에서 가슴으로

 

  예수님께서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투덜거렸습니다.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막14:4-5).

 

  삼백 데나리온은 현장 노동자의 1년 임금입니다. 꽤 큰 금액인데 제자들은 머리로 벌써 계산을 한 것입니다. 논리가 앞서고 계산이 빠른 이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여인의 행동을 가슴 뜨거운 사랑으로 받아들이셨고 여인의 행동을 영적으로 이해하셨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준비하였느니라"(막14:8).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30Cm에 불과합니다.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 살다보니 현대인들은 계산하고 분석하고 점검하는 일에 빠릅니다. "내 생각에는…" 하는 식으로 말문을 열고 이지적으로 따져서 허락을 합니다.

 

  하지만 이성 이외에 인간은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성이란 세상 이치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능력입니다. 계산하기 전에 느끼고 증명하지 않더라도 믿는 것이 영성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머리가 명석한 자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불과 30Cm밖에 되지 않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8월, 베트남 호치민에 갔을 때 겪은 일입니다. 월남전 당시 땅굴로 유명한 구찌 터널을 보러 가는 길에 한 식당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칠 즈음 식당 여주인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우리 일행이 들어갈 때부터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식대를 계산하다가 쓰러진 것입니다. 머리를 움켜쥔 채 여주인은 기도해줄 것을 호소했고 목사님 몇 분이 그의 머리에 안수하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서둘러 의자들을 모아 침상을 만들었습니다. 여주인은 편히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일어나 앉았습니다. 한 두 차례 좌우로 머리를 흔들더니 이내 양 손을 가슴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위를 돌아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여인의 손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불교의 전통에 깊이 사로잡혀 있던 여인이 목사님들이 오자 머리가 복잡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그 고통은 가슴 깊이 평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통은 머리로 왔지만 평안은 가슴으로 전해졌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30Cm, 이 여행에서 여인은 평안을 얻었습니다.

 

  30Cm—먼 길이 아닌데 많은 분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묻고 따지고 계산하기 전에 느끼며 누리며 살면 좋은데, 박수를 쳐주지는 못할망정 그 순간 삼백 데나리온을 계산해내는 제자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구교환 목사 (9change@hanmail.net)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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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에서 가슴으로
  • 201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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