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바보 같은 개구리

  • 김한석
  • 2019.09.25 오후 12:56

바보 같은 개구리


우리나라 묘지는 대체적으로 마을에서 떨어진 언덕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서양의 묘지는 동네 한 가운데 혹은 교회당 뜰에 있습니다. 평지에 가지런히 줄을 지어 안장되어 있는 그 위쪽으로는 묘비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묘비에는 간단한 이력과 함께 앞서 간 분들에 대한 추모의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청년이 묘비에 적혀 있는 글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노인들도 있고 간간히 젊은 사람들의 애처로운 이야기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그는 자그마한 묘비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묘비에는 다른 이들의 것과는 조금 다른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세 줄로 되어 있었는데 첫 줄에는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첫 줄을 읽으면서 청년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스쳤습니다.

 

청년은 다음 줄을 읽었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두 번째 줄을 읽으면서 청년은 묘비에 적힌 이야기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순간 자세를 가다듬고 마지막 줄을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어떤 사람이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어 죽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서 고통 없이 죽어 가게 할 수 없을까시험 삼아 끓기 직전의 뜨거운 물에 개구리 한 마리를 넣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는 물에 몸이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미지근한 물속에 개구리를 넣었습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 개구리는 그 물속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는 개구리를 보며 조금씩 불을 때기 시작했습니다. 물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갔습니다. 물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개구리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미지근한 물속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까보다는 조금 더 따뜻해진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개구리는 자기 몸이 익어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죽어간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개구리는 그냥 그렇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는 날짜를 알려주시지 않으십니다. 죽는 날이 정해지고 남은 날들을 셈하며 살아야 한다면 참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 날을 준비는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날이 언제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이 오면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부르심을 받는 날이 언제이든 하나님 나라에 들림 받아 올라가야 합니다. 그 누구도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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