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다친 것이 축복
다리를 다친 것이 축복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런데 축복은 고사하고 야곱은 죽여 버리겠다는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도망을 쳐야만 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야곱은 귀향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형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마주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큰일이다 싶은 야곱은 형에게 바칠 예물을 구별했습니다. 낙타 30마리와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등등 어마어마한 선물을 앞서 보내며 야곱은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주리라”(창32:20)고 기대합니다.
이제 얍복강을 건너면 형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야곱은 어떤 사람을 만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람에게서 축복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야곱은 그를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계속된 실랑이 끝에 야곱의 허벅지관절이 부러졌습니다. 고관절이 골절된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다음 날, 야곱은 절뚝거리며 형 에서를 만납니다.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던 형, 당장이라도 요절을 내겠다며 400명씩이나 거느리고 나온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을 보자 형의 태도가 돌변합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33:4).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왜 갑자기 형은 마음을 고쳐먹고 동생을 끌어안고 펑펑 우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렇게 단단했던 에서의 마음을 녹여버린 것일까요? 엄청난 예물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뒤에 보면 형 에서는 동생이 건네는 예물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피붙이였으니 어쩌겠냐고 하는 추측 역시 너무 단순합니다.
그 장면을 그려봅니다. 먼 길에 지쳤는데 지난밤에는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20년 만에 나타난 동생은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퉁퉁 붓고, 피멍이 든 채로, 야곱은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동생의 처절한 모습을 보는 순간 형의 마음에 애잔함이 흐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나쁜 녀석이지만, 죽일 놈이지만 얼마나 고생했나 싶었을 것입니다. 결국 형의 마음이 녹아내렸고 두 형제는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얍복강 나루에서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는 사고는 축복이었을까요? 있어서는 안 될 재난이었을까요? 멀쩡한 몸으로 형을 만나 칼부림을 당하는 것과 차라리 큰 상처를 입었지만 형의 환대를 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모르는 일입니다. 새옹지마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해도 슬퍼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먼 훗날 그 고난으로 인해 크게 웃을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