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아버지와 아들

  • 손성진
  • 2019.11.25 오후 11:58

아버지와 아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부자(父子)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느긋한 성격으로 마음 편히 즐기는 편이었고, 반대로 아들은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야심적인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꼭두새벽, 부자가 수레에 짐을 가득 실고 도시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아들은 연신 소를 찔러대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천천히 하거라. 아들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단다.” “하지만 아버지, 가장 먼저 시장에 가면 더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어요.”

 

  한참을 가다가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들아, 여기 삼촌이 사는 동네 아니냐? 잠시 들러 인사나 하고 가면 좋겠구나.” 아버지의 제안에 아들은 퉁퉁거렸습니다. “지금도 많이 늦었는걸요.” “그럼 몇 분이라도, 얼굴이나 보고 가자꾸나.” 아버지와 삼촌이 웃고 떠드는 내내 아들은 말도 못하고 씩씩거렸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다시 부자는 수레를 몰았습니다.

 

  갈림길에서 아버지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들이 소리를 쳤습니다. “아버지, 왼쪽으로 가야 지름길이잖아요?” “안다. 하지만 이쪽으로 가면 경치가 좋아. 야생화도 피어 있고 숲도 좋고멋진 강도 흐르지 않니?” 마음이 급한 아들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이 판에 무슨 구경이람. 다음부터는 아버지 떼놓고 혼자 올 테야.’

 

  다시 한참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구덩이에 빠진 수레를 꺼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가서 도와주자꾸나.” “아버지, 시간이 없다고요.” “아들아. 너도 살다보면 구덩이에 빠질 때가 있단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어야지. 그냥 모른 척 하면 되겠느냐?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거야.”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수레에서 내렸습니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부자는 다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퉁퉁거렸고, 아버지는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엄청난 섬광이 하늘을 갈랐습니다. 이어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들리더니 언덕 너머가 온통 잿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들아, 도시에 큰비가 오는 것 같구나.” “우리가 서둘렀으면 지금쯤 다 팔고 돌아가고 있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아들아, 너는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단다.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 좋겠구나.”

 

  늦은 오후, 부자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올랐습니다. 순간 두 부자는 한 동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두 사람은 가던 길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도시가 바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였습니다.

빌 로즈(Bill Rose)란 작가의 글을 정리하며 일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천천히, 잠시라도 느긋하게 인생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1
  •  아버지와 아들
  • 2019-11-25
  • 손성진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