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선입관에서 탈출하기

  • 손성진
  • 2020.10.04 오후 12:52

선입관에서 탈출하기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골목에 두 남자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흑인이었고 또 다른 남자는 백인이었습니다. 한 남자는 정장에 코트를 입은 중년이었고 다른 남자는 손에 칼을 들고 상대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에 동원된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그 앞을 지나쳐 갔습니다. 골목 안은 어두웠고 자전거 속도 때문에 정확히 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얼마 후 경찰이 사건 현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물었습니다. “누가 칼을 들고 있었습니까? 백인이 칼을 들고 있던가요? 아니면 흑인이 칼을 들고 백인 남자를 위협하던가요?” 경찰의 질문에 사람들이 답을 합니다. “흑인이 칼을 들고 백인 남자를 위협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는 달랐습니다. 사건의 현장에서 칼을 든 사람은 백인이었습니다. 젊은 백인 남자가 정장을 한 흑인 중년 남자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험에 동원된 사람들은 흑인이 칼을 들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입관 때문입니다. 흑인에 대한 좋지 못한 선입관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범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실험에 동원된 흑인들조차도 칼을 든 것은 흑인일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형성된 고정 관념이나 견해를 선입관(先入觀)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선입관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나사렛 예수니라”(1:45)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퉁명스럽게 받아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 나사렛 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에서는 선지자가 나올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베들레헴 사람 이새를 찾아가 함께 제사하자며 이새와 그 아들들을 초청합니다. 사무엘의 요청에 이새는 아들들을 불러옵니다. 그런데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제쳐놓습니다. 막내에 대한 좋지 못한 선입관 때문이었습니다(삼상16:11).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그 중심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 역시 선입관입니다. 반대로 전에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며 주눅이 드는 것도 선입관입니다. 선입관을 이겨내는 자만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1
  •  선입관에서 탈출하기
  • 2020-10-04
  • 손성진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