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 (1)

  • 임영종
  • 2021.08.21 오후 12:58

    1884, 호레이스 앨런이라는 미국 공사관 서기가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공식적으로 개신교 선교사가 아닌 의사였지만, 하지만 앨런은 선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조선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다음 해,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힘이 모아집니다.

    그리고 1886, 흔히 마마라고 불리는 천연두가 조선 땅에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메리 스크랜턴 여사가 세운 이화학당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첩, 기생 등 신분이 낮거나 소외된 여성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 하나가 천연두에 감염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로 이 학생은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거리에 방치되었는데 선교사들이 데려다가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1903년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천연두가 유행하면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왕실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천연두의 원인이 귀신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당을 불러 손님을 내보기 위한 손님굿을 하였고, 엽전, 음식 자루, 목마(木馬) 등을 귀신에게 바쳤습니다.

    부모들은 천연두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얼굴에서 마마딱지를 긁어모아 절에 가서 태우기도 했고, 마마 귀신이 다시는 오지 못하도록 지붕위에 날카로운 가시들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죽은 아이들을 그냥 그대로 서대문 밖에 내다버렸고, 죽지는 않았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병자들을 마을 밖 공터에 끌고 가 나무에 묶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선교사들의 지침을 잘 따랐습니다. 소독도 하고 예방주사도 맞았습니다. 당시 선교사들 가운데서는 의료 방면에 관계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 혜택을 입은 것입니다. 발병률이나 사망률을 볼 때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낮았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당시 세상 지도자들과 다른 종교 관계자들은 숨거나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했습니다. 반대로 기독교인들은 전염병과 맞서 싸웠습니다. 선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은 병에 걸린 이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의 신분, 종교, 재산, 사회적 지위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헌신과 희생을 통해 기독교의 브랜드 가치가 고난 중에 있는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달라졌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고난을 통해 교회가 부흥한 것입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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