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4)

  • 임영종
  • 2021.09.11 오후 02:17

   초대교회 시대에 그랬듯이 종교개혁 시대에도 대역병이 돌았습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 1505, 이미 흑사병이 돌고 있었습니다. 1511년과 1512,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는 흑사병으로 약 1,800명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수 천 명의 사망자들이 속출하였습니다.

    15171031,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입구에 95개 질의서를 내걸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 이미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해 큰 혼돈을 겪고 있었습니다. 황제와 그 가족들이 왕궁을 버리고 시골로 피신하였고 어떤 황제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들어갈 관을 7년 넘게 가지고 다녔습니다.

    15277, 루터가 살고 있던 비텐베르크에도 흑사병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피난을 가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비텐베르크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심지어 루터는 환자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생활하며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현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영혼 위로자의 직무를 계속하며 루터는 죽음에 직면할 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해 그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통을 받고 죽어가고 있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영적 직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신앙 안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도록 믿음을 독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흑사병의 환난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로하고 섬기고 치료하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는 일로서 그 가운데 말씀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만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만이 아니라 츠빙글리, 칼뱅 등등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하나 같이 환자들의 곁에 머물며 치료를 도왔고 임종까지 옆에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에 몰아닥친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습니다. 당시에는 귀족들과 성직자들도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끝까지 환자들 곁을 지켰습니다. 이들은 생명을 걸고 낮아짐과 섬김,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고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있었던 대역병, 중세에 밀어닥쳤던 흑사병, 그리고 한국 근대사를 어둡게 했던 천연두나 콜레라 등등, 이런 위기 상황은 오히려 교회의 성장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대역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훗날 역사는 새로운 각도로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소망합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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