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교회 이야기
전라북도 김제에 아주 오래된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100년 된 교회인데 처음에는 두정리교회라 했다가 1930년대 언제부터 금산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김제 금산교회가 유명한 이유는 건축 당시 ‘ㄱ’자 예배당으로 지어졌는데 지금까지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7년,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금산교회가 유명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자익과 조덕삼 때문입니다. 이자익은 1882년 경상남도 남해의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면서 행상을 하던 이자익은 밥이나 실컷 먹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육지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어찌하다가 조덕삼이라는 김제 부잣집에 마부(馬夫)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자익이 17세가 되던 때입니다.
그 어간에 김제 땅에 선교사가 들어왔습니다. 테이트(L. B. Tate, 최의덕)라는 선교사는 조덕삼과 이자익에게 복음을 전했고 두 사람은 같은 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1905년 10월, 양반가 천민이 같이 세례를 받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부흥하여 성도가 50명이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장로님을 세우기로 하고 장로 투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투표에서 이자익이 당선되고 조덕삼은 떨어진 것입니다. 마을 유지이자 주인마님이 떨어지고 그 집에서 일하는 마부가 당선되었으니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조덕삼이 발언권을 얻어 말했습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집사는 저보다 신앙 열의가 대단한 분입니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과수원을 팔아 교회당 건축비를 감당했다고 합니다. 돈이 없던 이자익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등 몸으로 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겼고 몇 년 후 조덕삼 역시 장로가 되었습니다. 금산교회 1대 장로 이자익, 2대 장로 조덕삼이 된 것입니다. 아우가 먼저, 종이 먼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조덕삼은 이자익을 불러 평양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라고 권합니다. 물론 생활비와 학비 일체를 대주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조덕삼은 신학교를 졸업한 이자익을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합니다. 자기 종이었던 사람을 목사님으로 정중히 모시는 조덕삼의 겸손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회 총회장을 세 차례나 역임했습니다. 3선 국회의원으로 일본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조세형 장로는 바로 조덕삼 장로의 손자입니다.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