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안중근 남자현
1933년, 일본인들의 찬탈이 한창이던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을 암살 작전에 투입합니다. 암살단에게 주어진 목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 그리고 강인국 같은 친일파들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일본 경찰은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청부살인업자를 동원하여 세 사람의 뒤를 쫓습니다. 친일파 암살 작전에 투입된 세 사람과 이들을 쫓는 킬러 사이에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 펼쳐집니다.
2015년 7월 22일, 광복절에 맞춰 개봉된 「암살」이라는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친일파 암살 작전을 그린 이 영화에 천만이 넘는 관객이 관람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만큼 항일 감정은 여전히 뜨겁다는 반증입니다.
영화에서 배우 전지현이 열연했던 안옥윤의 실제 인물이 남자현이라는 독립운동가입니다. 남자현(1872-1933)은 경북 영양 출신으로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죽자 유복자를 기르면서 시부모를 모셨습니다. 을사조약 이후에는 의병으로 활동하던 친정아버지를 도와 장정들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3·1운동 이후, 남자현은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투사들을 간호했고, 지린성에 교회를 세우고 여성교육회를 조직해 독립운동과 여성계몽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의 특사가 하얼빈에 왔습니다. 소식을 접한 남자현은 흰 수건에 '조선독립원'이라고 혈서를 쓴 뒤 끊어진 손가락과 함께 특사에게 보내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강인한 의지로 단식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남자현은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는 말을 남기고 하얼빈의 허름한 여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향년 61세, 많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여자 안중근’이라 불리는 남자현 의사는 사사기에 나오는 야엘을 생각나게 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철 병거 900대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20년 넘게 학대하였습니다(삿4:1-3). 하나님은 여 선지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셨고, 드보라는 바락이라는 장군과 함께 가나안 야빈의 군대를 공격합니다. 패배를 직감한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헤벨이라는 사람의 집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시스라가 잠들자 헤벨의 부인이 그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입니다. 헤벨의 부인이 바로 야엘입니다. 대단한 여인입니다.
며칠 전 제79주년 광복절을 보냈습니다. 뉴스에 보니 이번 광복절 기념식에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싸우고 분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남자현같이 조국독립을 위해 생명을 바친 분들 앞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