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긴즈버그
기원전 1,200년, 가나안 왕 야빈이라는 자가 철 병거 구백 대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무기라고는 칼 몇 자루와 나무 몽둥이가 전부였던 이스라엘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20년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삿4:3).
이때 드보라가 등장합니다. 랍비돗이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가정을 지키고 있던 드보라는 선지자에 이어 사사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사사는 나라 안으로 송사가 벌어졌을 때 판결을 내리고, 밖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들을 통솔하여 나가 싸워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십계명에서 여자는 집안 재산 목록 가운데 하나로 분류됩니다.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20:17). 오병이어의 현장에서조차 그 모인 무리를 셈할 때 마태는 여자를 제쳐 놓았습니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마14:21). 그런데 그 한계를 뛰어넘은 여인이 바로 여선지자 겸 사사 드보라입니다.
미국 근대사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여성 가운데 루스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 1933-2020)가 있습니다. 법률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싸운 드보라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컬럼비아대학교 법학대학원 출신인 긴즈버그는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겪은 도전과 경험을 통해 성별 차별에 대하여 미국 사회에 도전장을 걸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 미국 여성은 은행에서 자기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었고 대출도 불가능했습니다. 성차별이 심한 미국 사회를 통탄하며 긴즈버그는 ‘평등 신용 기회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법안이 공포되면서 드디어 미국 사회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 성별, 나이, 혼인 상태 등에 기초한 모든 차별 행위가 금지되었습니다. 이때가 1974년, 드디어 여성에게도 신용카드가 발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루스 긴즈버그는 평생을 변호사와 판사로, 법학 교수로, 그리고 마지막 8년은 연방대법관으로 헌신하였습니다. ‘전미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2002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2009년), 「타임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15년)에 선정되었습니다. 2020년 9월 18일, 루스 긴즈버그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로 세상이 요란합니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치기를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건가 하는 관심이 뜨겁습니다.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