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백정 출신 의사 박서양

  • 성지현
  • 2025.11.22 오후 03:13

  박서양(朴瑞陽 : 1885-1940)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박서양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복음을 들고 인천항에 도착한 1885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서양의 아버지 박성춘은 백정이었습니다. 당시 백정은 그 신분이 가장 낮은 천민 계급으로 백정은 상투를 틀 수 없고, 갓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려도 가마를 타는 것이 금지되었고, 돈이 있어도 집에 기와를 얹을 수 없었습니다.

  1893, 아버지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에이비슨이라는 의료선교사의 치료를 받고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박성춘은 사무엘 무어라는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박성춘이 교회에 출석하자 백정과는 함께 예배할 수 없다며 몇몇 양반들이 교회에 등을 돌렸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어 선교사의 노력으로 여섯 명의 백정들이 교회에 출석했고, 전도사가 된 박성춘은 서울에서 수원까지 내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1895, 윤치호, 서재필 등과 협력하여 백정 신분을 철폐하는 신분 차별철폐법을 통과시켰습니다.

  191112, 박성춘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정 출신 장로가 되었습니다. 장로가 되자 예수 믿고 새봄을 맞이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라는 뜻으로 자기 이름을 성춘으로 개명하고, 아들의 이름 역시 봉주리에서 서양으로 바꾸었습니다. 서양은 상서(祥瑞)로운 태양이 되라는 뜻입니다.

  박성춘은 아들을 세브란스의학교 교장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허드렛일을 했지만 그 성실함과 지혜를 인정받은 박서양은 세브란스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1908,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1회로 졸업하고, 정부로부터 우리나라 최초 의사 면허인 의술 개업 인허장을 받은 7명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중원에서 고종 황제의 진료를 보기도 했던 박서양은 특이하게도 음악에 조예가 깊어 승동학교에 음악과가 설치되자 학과장으로 부임합니다. 일찍이 YMCA를 출입하며 성악과 오르간을 배웠는데, 당시 평양에서 온 음악선생 김인식, YMCA 학관의 학생이었던 홍난파와 함께 박서양은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박서양은 대한국민회 군사령부에서 군의관으로 봉사했고,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최진동의 북로 도독부 등과 함께 봉오동전투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박서양은 자신이 운영하던 승동학교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자 고국으로 돌아와 황해도 연안에서 병원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병을 얻어 19401215, 박서양은 경기도 고양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향년 55.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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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정 출신 의사 박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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