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사랑하며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에 방정환 선생이 어린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고유한 말 가운데 늙은이, 젊은이라고 하는 낱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라는 글자는 ‘높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분’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희승 박사가 엮은 『국어대사전』(1981)은 “어린이란 어린아이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서
나이가 어린 아이란 뜻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시기에 관해서는 학자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젖먹이 시기와 유아기를
거친 뒤 초등학교 학령기에 이르렀을 때까지로 구분합니다.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가 어린이입니다.
아동의 신체적, 심리적 발달을 연구하는 발달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0∼2세까지를 영아기, 3∼5세까지를
유아기, 6∼13세까지, 즉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까지를 아동기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를 일컫는 아동의 연령 범위를 18세 미만인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관련된 전래 속담을 보면 어린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어린아이와 술 취한 사람은 바른말만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어린이들의 순진성과 단순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를 우물가에 둔 것 같다’라는 말은 어린아이들의 미숙함과 위태로움을 보여줍니다.
‘어린아이는 괴는 데로 간다’라고 할 때는 아이들은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찬물도 못 먹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이들이 호기심과 모방성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말하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은 초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어린이들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1920년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에는
어린이에게는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가 무조건 강요되었고, 어른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멸시하고 하대하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어린이를 함부로 하는 풍토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나은 자녀마저 학대하는 일이 있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곱게 키우는 것도 문제입니다.
1923년 출간된 「개벽(開闢)」이라는 잡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어린이는 풀로 비기면 싹이오, 나무로 비기면 순인
것을 알쟈. … 한(限)업는 극(極)업는 보다 이상(以上)의 명일(明日)의 광명을 향하야 줄다름치는 자임을 알쟈. …
그들(어린이)을 떠나서는 우리에게 아모러한 희망도 광명도 업는 것을 깨닫쟈.” 우리에게 어린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