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 (2)

  • 임영종
  • 2021.08.28 오후 01:26

   구한말 천연두에 이어 우리나라에 닥친 전염병은 콜레라였습니다. 1885년 부산항으로 입국한 일본인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격리가 빨리 이루어져 부산 밖으로는 전염병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제중원 의사 호레이스 앨런은 오염된 하천과 식수, 씻지 않은 야채, 부패한 음식이 콜레라 확산의 원인이라 보고 일련의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돼지고기, 수박을 먹지 못하게 하고 물은 반드시 끓여 먹을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과일은 소금물로 씻고 마당과 주변을 청결히 하며 집안에 소독제와 항생제를 구비하도록 권장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레라는 서울에도 파고 들었습니다. 1886, 불과 6주 만에 서울에서 10,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당시 사대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15만 정도였다고 하니 참 많은 이들이 희생이 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콜레라를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었습니다. 콜레라로 인한 경련이 다리에서 시작하여 심장까지 파고 들 정도로 극심했는데 사람들은 그 고통을 악한 쥐의 악령쥐신이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부는 병을 쫓기 위해 쥐신에게 제사를 드렸고 사람들은 환자의 상처 부위를 고양이 가죽으로 문질렀습니다. 대문이나 현관에 고양이 그림을 걸어놓은 집들이 늘어났는데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는 집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바람에 콜레라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95, 또 다시 콜레라가 창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언더우드를 비롯한 북장로회 선교사들과 새문안교회 성도들이 병원과 검역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가슴에 적십자 배지를 달았는데 사실은 기독교인이라는 표식이었습니다. 콜레라가 만연하자 정부에서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병을 이겨내자고 하는 벽보를 붙였습니다. 그 벽보의 문구 가운데는 예수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라고 적혀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천연두와 함께 콜레라는 우리나라에 큰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이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위험을 무릎 쓰고 소박하고 단순하게 이웃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의학과 의술을 가지고 들어온 서양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면서 우리나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천연두와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때문이었다고 하는 역설도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1
  •  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 (2)
  • 2021-08-28
  • 임영종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