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동행

  • 임영종
  • 2022.01.08 오후 12:54

     헤어졌다가 다시 합치고, 얼마 있다가는 또 다시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이런 현상이 정치하는 이들에게 자주 나타납니다. 말로는 원팀이라고 하는데 언제 두 개가 되고 셋으로 나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쇼트트랙 경기 중에 우리나라 선수들끼리 경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편끼리 자리를 다투고 밀치다가 두 명 모두 쓰러지는 바람에 메달을 놓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고의적으로 부딪혔다고 해서 재판이 열렸는데 결말이 어떻게 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행(同行)’이란 목표를 정해놓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목표도 같아야 하지만 걸어가는 빠르기도 같아야 동행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하기에 세상 사람들과 동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코스타리카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화창한 어느 날, 도시 외곽의 구릉지대를 걷고 있었습니다. 양쪽으로 커피농장들이 있었는데 기름칠을 한 듯 반질거리는 검푸른 이파리들이 아열대의 태양을 반사하였습니다. 길을 따라 지은 작은 집들의 현관과 잔디밭에는 가지각색의 꽃과 관목이 가득했고, 붉은 꽃이 피어 있는 덩굴이 담장과 지붕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작은 목공소가 있었습니다. 여행자는 호기심에 목공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작업장은 아주 작았습니다. 침대를 만들고 있었는데 뒤쪽으로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목수는 나무들을 다듬고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붙이기도 하고 나무못을 박아 고정을 시키며 목수는 아름답고 멋진 침대를 만들었습니다. 여행자는 목수의 기술을 칭찬을 하며 물었습니다. “참 멋진 작품이네요. 그런데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 분이십니까?” 목수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답을 했습니다. “저희 목공소에는 둘이 일하고 있지요.” 둘이라는 말에 여행자는 누가 또 있나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눈치를 챈 목수가 손끝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합니다.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들고 있답니다.”

     1896년 가을영국 글래스고대학 강당56년 전 아프리카에 들어가 탐험과 헌신의 생활을 했던 83세 노인이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빅토리아폭포를 발견하는 등 아프리카 문명화의 선구자가 된 리빙스턴이었습니다. 리빙스턴이 결론으로 던진 말입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견뎠습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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