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 성지현
  • 2024.02.17 오후 02:08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18:21) 이 말을 던지며 베드로는 으쓱했을 것입니다. 세 번이면 충분한데 일곱 번이라고 했으니 우쭐거릴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훨씬 강했습니다.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18:22). 이어 예수님은 천국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18:23)라고 시작하신 이야기 역시 그 중심은 용서였습니다. 일만 달란트나 탕감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누구에게나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받은 상처와 모욕감, 경제적인 손실 등등, 생각하기도 싫고 다시 만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그리고 그 흔적은 지워지지도 않은 채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토록 씁쓸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용서하라고 채근하십니다. 기도에 대해 가르치신 다음에도 용서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6:14-15).

  바울도 용서를 강조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3:13).

  누구를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용서는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나누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베푸는 것이 용서입니다.

  한편 용서는 개인적인 고통과 걱정의 결과까지 주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복수를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 갚는 것은 주님께 맡긴다면 그 자체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23-24). 주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구교환 목사 / changek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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