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새벽을 깨우는 인생

  • 구교환 목사
  • 2014.04.06 오전 07:30


새벽을 깨우는 인생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어떤 성도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오늘 이 말씀을 전한다고 설교를 시작하시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늘 육신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동시에 주일 아침 예배 시간에 설교를 들으면서 내게 꼭 맞는 말씀이라고 해서 그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판단하는 것 역시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결단하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을 깨닫고 기어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교제는 깊은 밤이나 특별히 새벽 미명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공원을 산책하다가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내는 경우가 있겠으나 그보다는 새벽 미명 기도 시간에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헨리 나우웬의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듣는다'라는 말은 라틴어로 "아우디레(audire)"라고 합니다. 온전히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은 '옵 아우디레(ob-audire)"라고 하는데 이 말에서 "순종(obedience)"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그 닫혀 있는 정도만큼 귀도 막힙니다. 그래서 귀머거리를 라틴어로 "수르두스(surdus)"라고 하며 귀먹은 정도가 심한 사람을 향해 "어리석다(absurdus)"라고 말합니다. 즉 어리석다는 것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 상태, 혹은 귀가 얇아져 온갖 음성에 휘둘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사랑받는 자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버림받은 자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세상의 속삭임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내기 위해 더 많이 가져야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넓은 주거 공간, 더 화려한 옷, 더 멋진 자동차를 소유함으로 세상에서 높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올 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입니다.


   밤은 인생을 환락의 세계로 유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밤과 새벽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뒤로 하고 하나님께 '옵 아우디레'할 때 '압 수르두스'한 처절한 인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새벽을 깨우는 인생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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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을 깨우는 인생
  • 2014-04-06
  • 구교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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