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고난주간의 길목에서

  • 구교환 목사
  • 2014.04.12 오후 01:26

고난주간의 길목에서


  조개의 몸에 모래가 들어가면 조개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떤 조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썩어서 죽습니다. 반대로 어떤 조개는 계속해서 낙하라는 거품을 품어냅니다, 하얀 거품이 나는 물질인 낙하는 모래 주위를 감싸 안으며 조개의 부식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 조개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낙하라는 물질을 뿜어내는 데는 많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을 회피하는 조개는 결국 썩을 수밖에 없지만 고통을 이겨내는 조개는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진주를 만들어냅니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40세 한창 나이에 맹인이 되었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밀턴은 고난 가운데서 「실낙원」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실낙원」을 출판한 후 밀턴은 "오, 주님! 이런 고통을 통하여 내 영혼이 수그러짐은 나의 창조자를 섬기기 위함이니이다. 고난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평생 고난이나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며 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들 대부분은 고난이나 고통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다가 무섭고 두려운 순간을 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앞에 간절해집니다. "사람은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것은 귀머거리에게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는 루이스(C. S. Lewis)의 말에 동감합니다.


   조개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고난이 올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회피하거나, 아니면 맞서 싸우거나…. 맞서 싸우는 이유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최고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통이 진주를 만들어내듯, 모든 것을 빼앗긴 상실감이 오히려 불후의 명작인 「실낙원」을 만들어내듯,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고통은 또 하나의 창조 역사의 시작입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 고난주간의 길목입니다. 고난주간의 클라이맥스는 금요일, 밤새도록 고난을 당하셨던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아침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이 있기 위해 죽음이 있어야 했고,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고난이 없었으면 죽음도 없었고, 죽음이 없었으면 부활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고난은 부활로 나아가는 정도(正道)입니다.


   고난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처럼 참아야 합니다. 조개 몸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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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주간의 길목에서
  • 2014-04-12
  • 구교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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