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아니마밈의 노래

  • 임영종
  • 2021.02.27 오후 02:15

 세계2차 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은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마밈이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그 잔인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만들어진 이 노래의 원문은 나는 믿는다, 메시아께서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매일같이 많은 이들이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가자 유대인들은 아니마밈의 가사를 그런데 메시아가 너무 늦게 오신다.”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는 것이 불안하고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용소에 젊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 역시 언젠가는 가스실로 끌려갈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며 언젠가는 자유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139:9-10)는 말씀을 놓지 않았습니다.

젊은 의사는 우연히 유리 파편조각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면도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치 군병들은 이 사람을 보고는 살려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대신 허약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들을 가스실로 끌고 갔습니다. 얼마 후 전쟁이 끝나고 이 젊은 의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191931, 정오였습니다. 그 날을 시작으로 우리 선진들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내일이 31절입니다. 올해로 102년을 맞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날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31절이 정치판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태극기를 들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쳐야 하는데 요즘 태극기는 이상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민중계몽운동에 헌신했던 함석헌 선생(1901-1989)을 기억합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란 책에서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셰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 역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 수천 년을 두고 매 맞고 짓밟히고 조롱 받고 속임 당하는 이 백성을 생각하면 눈물 없이 넘어 설 수가 없는 것이다.”

31절이 31절다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불평에서 감사로, 다툼에서 화평으로 나아가는 31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극기를 흔들지 않아도 우리만의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실 것을이라고 말입니다.

(구교환 목사 / 9cha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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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마밈의 노래
  •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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