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조금씩 늦으시는 하나님

  • 구교환 목사
  • 2015.02.14 오후 12:30


조금씩 늦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우리를 쉴 만한 물가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종종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더디 행동하셨을까, 조금만 발 빠르게 행동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유인해 낼 때 하나님께서 조금만 빨리 오셨더라면 아벨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방주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이 방주로 들어간 다음 곧바로 비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야 했습니다. 방주 그 컴컴한 곳에서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노아의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요?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달 열흘”에 어린양을 취하고 “열나흘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출12:1-6)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어린양과 함께 백성들은 적어도 나흘 동안 같이 살아야 했습니다. 갈멜산에서도 그랬습니다. 제단 위에 불이 임했을 때, 불이 임함과 함께 비를 주셨으면 감동이 더 컸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의 몸종이 일곱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비를 주시지 않고 뜸을 들이셨습니다(왕상18:41-44).

 

   인생의 눈으로 볼 때 느릿느릿 행보하시는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가 병에 걸렸을 때 그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틀을 더 머무신 다음 베다니로 가셨습니다(요11:6). 제자들은 빨리 가자고 했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지체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푸념을 하지만 예수님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잡히시던 날에도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며 호통을 치셨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 없이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숨이 끊어지셨을 때도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서 곧바로 부활하셨으면 어떠했을까요? 훨씬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삼 일 동안이나 무덤 속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하심은 우리들 그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우리 인생보다 더 멀리 보시고 세상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임금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시간표를 작성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표에 따라 맞춰드리는 것이 믿음 안에 행복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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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씩 늦으시는 하나님
  • 2015-02-14
  • 구교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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