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천교회

목회칼럼

 

나인성 과부의 아들

  • 구교환 목사
  • 2014.11.01 오후 03:17


나인성 과부의 아들


   불교에 불쌍한 과부의 아들이 죽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사위성에 머물고 있을 때 외아들을 잃은 과부가 찾아와 자신의 슬픔을 털어놓았습니다. 여인의 사연을 듣던 석가모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인이여! 온 마을을 다니며 한 번도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각각 쌀을 한 움큼씩 얻어 오십시오. 그러면 내가 슬픔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겠소.”


   여인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여인은 지칠 대로 지쳐 석가모니에게 돌아왔습니다. 석가모니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여인이여!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지요.” 아마도 석가모니는 인생의 도리를 여인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이야기는 성경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성에 가셨을 때 한 장례행렬과 마주치셨습니다. 죽은 자는 이미 과부가 된 한 여인의 외아들이었고 많은 이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여인을 보자 불쌍한 마음이 드신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가셔서 그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사람을 살려주셨습니다(눅7:11-17)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신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의 어머니였습니다. 슬퍼 울던 여인에게 다시 살아난 아들은 엄청난 기쁨이요 행복일 것입니다. 초상집이 잔칫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했고 몇 살이나 살다가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어차피 때가 되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아이를 다시 살려내셨을까요? 차라리 석가모니처럼 삶과 죽음에 대하여 현실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모두 세 명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백부장 야이로의 딸, 베다니의 나사로, 그리고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자신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는 부활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부활을 향한 소망이며 영생에 이르는 출발이라는 사실이 곧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야!’라며 눈에서 눈물을 닦아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요3:16)이라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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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인성 과부의 아들
  • 2014-11-01
  • 구교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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